智異山 紀行詩 - 河東地域을 중심으로(13)
김지백(澹虛齋 金之白)
- 제 13 호
본문
武陵洞中次李子遠韻(무릉동중차이자원운)
역자(譯者) 정경문 (茗谷 鄭慶文)
-무릉동에서 이자원의 시에 차운하다-
漠漠烟蘿黑(막막연라흑)
자욱이 안개 낀 담쟁이덩굴 어둑하고,
西岑暝色沉(서잠명색침)
서산은 황혼에 하늘빛이 깊어만 가며,
溪分鶴洞遠(계분학동원)
시냇물은 먼 청학동에서 나누어 흘러,
谷到石門深(곡도석문심)
골짝에 이르니 깊숙한 곳 석문이라네.
古寺遺僧住(고사유승주)
오래된 절에는 스님이 남아서 머물고,
殘碑老蘚侵(잔비노선침)
깨진 비석엔 오래된 이끼가 끼었으며,
孤雲千載事(고운천재사)
천년 전에 고운의 업적을 생각하는데,
陳迹邈難尋(진적막난심)
지난날의 자취 아득하여 찾기 어렵네.
子遠(자원) : 이문재(李文載.1615~1689). 조선 중기의 유 학자. 자:자원(子遠). 호:석동(石洞). 본관:전주(全州). 김 집(金集)의 문인.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 에 전념하였다. 문집《석동유고(石洞遺稿)》.
蘿[여라 라] 여라(女蘿:선태류에 속하는 이끼). 담쟁이덩굴. 暝色(명색) : 황혼의 하늘빛.
鶴洞(학동) : 청학동(靑鶴洞).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도인 (道人)들의 이상향(理想鄕). 경치가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 한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 “청학동(靑鶴洞)은 지리산 속에 있다. 진주에서는 서 쪽으로 1백 47리의 거리이다.”[靑鶴洞在智異山中距州西 一百四十七里]라고 했다.
이 詩에서는 화개면(花開面) 쌍계사(雙磎寺) 위쪽 불일폭 포(佛日瀑布) 부근을 가리킨다.
石門(석문) : 화개면(花開面) 운수리(雲樹里) 쌍계사(雙 磎寺) 입구의 바위가 양쪽에 문처럼 있다하여 석문(石門) 이라고 한다. 오른쪽 바위에“石門” 왼쪽 바위에“雙磎”4자 가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孤雲 崔致遠.857~?)의 친필이 라고 한다.
殘碑(잔비) : 깨어진 비석(碑石). 비바람을 견디고 오래 전(傳)하여 남아 있는 비석(碑石).
陳迹(진적) : 지난날의 자취.
※ 1655년(효종6) 10월 11일 쌍계사(雙磎寺)를 떠나 무릉 교(武陵橋)를 건너 신흥사(新興寺)의 옛터를 찾아가 능파 대(凌波臺)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센 물결을 건너 너럭바 위에 이르렀다. 너럭바위 위에는 세이암(洗耳巖)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체가 최치원(崔致遠)의 필 체(筆體)와 비슷하나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자원 이문재(子遠 李文載)가 “武陵洞(무릉동)” 시(詩)를 지어 차운(次韻)하였다.
김지백[澹虛齋 金之白.1623(인조1)~1671(현종12)].
조선 중기 학자. 字:자성(子成). 號:담허재(澹虛齋). 本貫:부안( 扶安). 居:남원(南原). 文集《담허재집(澹虛齋集)》. 1648 년(인조26) 과거에 급제, 진사(進士), 사헌부 집의를 역임. 만년에는 고향 남원에서 후생들의 교육에 힘썼으며 학문 에만 정진하였다.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