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 紀行詩 - 河東地域을 중심으로(10)
역자(譯者) 정경문 (茗谷 鄭慶文)
- 제 10 호
본문
김지백(澹虛齋 金之白)
雙磎寺(쌍계사)
-쌍계사-
雙水交流一逕微(쌍수교류일경미)
두 시냇물은 어울려 흐르며 오솔길 희미하고,
古壇香桂襲秋衣(고단향계습추의)
옛 단의 계수나무 향기는 가을옷에 스며드네,
孤雲去後客尋寺(고운거후객심사)
고운 선생 떠난 후로 나그네 절집을 찾으니,
落木飛時僧掩扉(낙목비시승엄비)
나뭇잎 날아 떨어질 때 스님은 문을 닫았네.
巖竇靈禽巢寂寞(암두영금소적막)
바위 굴의 신령스러운 새 둥지는 적막하고,
石門遺筆跡依희(석문유필적의희)
석문 바위에 남긴 고운의 글씨는 희미하네,
武陵橋下花開口(무릉교하화개구)
무릉교 다리 아랫마을은 화개골의 입구이니,
疑帶當年玉笛歸(의대당년옥적귀)
당년에 옥피리 불면서 돌아가는 듯 한다네.
雙磎寺(쌍계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724년(신라 성덕왕 23)에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제자인 삼법(三 法)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840년 진감선사( 眞鑑禪師)가 중창, 886년 정강왕(定康王) 때 쌍계사(雙磎寺)로 절 이름을 바꾸고, 1632년에 벽암(碧巖)선사가 중건하였다. 孤雲(고운) : 신라시대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字.
掩扉(업비) : 사립문을 걸어 잠그다.
巖竇(암두) : 바윗굴.
靈禽(영금) : 신령스러운 새.
石門(석문) : 화개면(花開面) 운수리(雲樹里) 쌍계사(雙磎寺) 입 구의 바위가 양쪽에 문처럼 있다하여 석문(石門)이라고 한다. 오 른쪽 바위에“石門” 왼쪽 바위에“雙磎”4자가 새겨져 있는데, 최치 원(孤雲 崔致遠.857~?)의 친필이라고 한다.
遺筆(유필) : 죽은 사람이 생전(生前)에 써서 남겨 놓은 글씨.
※ 1655년(효종6) 10월 9일. 연곡사를 구경하고 화개면(花開面) 덕은리(德隱里) 영당(影堂)에 있는 정여창(一蠹 鄭汝昌) 선생이 살던 옛터를 살펴보고, 저녁 무렵에 화개동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 가 두 물줄기가 서로 만나는 곳에 이르니, 곧 이른바 쌍계(雙溪)라 는 곳이었다. 과연 석문이 있는데 큰 네자 석각이 동네 어귀의 두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강한 필치가 마모되지 않아, 마치 어제 쓴 듯하여, 최치원의 진면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쌍계사(雙溪寺)에 들어가 그곳 승려를 따라 옛 자취를 두 루 둘러보고,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를 어루만져 보았다. 비 문을 짓고 쓴 것이 또 모두 최치원(孤雲 崔致遠)의 솜씨이기 때문 이다.
오랫동안 흥망성쇠 겪으며 인간사가 무수히 바뀌었는데, 남겨진 자취 가운데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비석뿐이니, 또한 충분히 옛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詩 한 수를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