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송림공원
시인 최증수
- 제 10 호
본문
해질녘의 송림공원
시인 최증수
신비한 솔숲이 만든 저녁놀을 타고
해가 기울면 마음이 급해지는지
산그늘이 내리자 어스레한 빛은 뒷걸음질치고 다정하던 풀벌레소리 들리지 않자
나의 눈과 귀도 어두워지며
지친 사람들은 서둘러 송림을 떠난다.
먼데 불빛이 보이면 음기가 살아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듯 사라지며
강물은 작은 포말 흘러 보내다 지치고
친구인 모래는 빛을 잃고 숨을 죽인다.
저녁이 휘어질 때 운무가 송림 감싸자
축복처럼 서있던 소나무들이
어룽진 으스름에 빨려 들어가고
자신을 빼닮은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
하루를 밀어낸 그림자가 제왕처럼 호령했는지
밝음이 줄행랑치고 고요가 소리조차 삼키자
희미한 뜻도 아려한 꿈도 잃어버린
해질녘의 솔밭은 어떤 흔들림도 없다.
어둠에 잡혀가서 밤새도록 生고생 할
숲의 안부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어둠에 밀려 소리 없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