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화장실
시인 최증수
- 제 4 호
본문
송림의 푸른 솔밭을 푸른 마음으로
젊은이 흉내 내며 걸으니
노인 아니랄까 땀나고 호흡이 빨라진다.
때마침 바람 불어와 다리에 기운 돋울 때
배에서 똴똴 거리는 소리 나더니 볼 일이 생기네요.
급한 설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두리번거리니 솔바람 화장실이 손짓한다.
간판의 글씨체가 솔을 닮아 신기한데
솔과 바람도 뒷간에서 볼 일 보나요?
급할수록 몇 배 더 반가운 곳 변소.
몸을 뒤틀고 아랫배에 힘주면서
작은 것, 큰 것, 소리 나는 방귀는 물론
몸의 아픔과 마음의 짐까지도 다 비우고,
명상에 드니 순간에 진리에 도달한다.
이젠 스스럼없이 자연 같은 친구라며 환영해주는
그 솔바람으로 기분 좋게 싱긋이 웃어본다.
얼굴을 멋지게 꾸미는 화장실에서
세상의 한 숨과 짓눌린 억울함도 내려놓고,
아웅다웅 다툼도 훌쩍 던져버리니
똥창 맞다며 솔과 바람⽤ 화장실이
겨우 똥주머니 신세 벗어난 나에게
‘비우면 가볍다. 비워야 아름답다.’며
뜻 모를 작별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