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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혈세 낭비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2026.01.27     제 4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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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끊임없이 계속되는 혈세 낭비



하동 곳곳에서 ‘예쁜 거리 조성’이라는 말이 들 려올 때마다, 군민들의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 기 어려운 불안이 먼저 스친다. 그 말이 붙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장면이 반복 돼 왔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완성돼 있 던 공간들이 하나둘씩 공사의 대상이 되고, 가 로수는 베어지며, 보행로는 뜯겨 나간다. 수십 년 동안 시간과 계절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풍 경은 행정의 한 번의 결재로 너무도 쉽게 사 라진다.

옥종과 횡천에서 진행된 가로수·거리 조성 사 업은 공통된 출발점을 갖고 있다. 애초부터 ‘ 새로 만들 필요가 없는 공간’들이었다는 점이 다. 옥종 대곡리 진주 방향 간선도로에는 수령 30~40년의 벚나무 성목들이 자연스러운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횡천면 소재지 역시 교 통량이 줄어든 이후에도 일상 보행에 큰 불편 이 없던 곳이었다.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이미 지역의 얼 굴이자 주민들의 삶 속에 자리 잡은 공간들이 었다.

그러나 ‘명품’, ‘예쁜 거리’라는 이름이 붙는 순 간, 이 공간들의 성격은 일제히 바뀌었다. 관리 와 보존의 대상이던 길은 공사의 대상으로 전환됐고, 이미 완성돼 있던 경관은 ‘다시 만들어 야 할 무언가’로 격하됐다. 이 지점에서 던지는 질문은 분명해진다. 하동의 가로수·거리 사업 은 과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선택이었는가, 아 니면 이미 축적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며 예 산을 소모하는 행정의 반복이었는가.

심기 위해 베어내는 행정

옥종면의 벚꽃길을 떠올리면, 군민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꽃보다 ‘시간’이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고 지는 벚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뿌리 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계절과 함께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 시간의 자산이 ‘예쁜’, ‘명품’이라는 말 앞에서는 너무도 허망 하게 잘려 나갔다.

옥종면 추동마을 앞 구간이 그렇다. 추동마을 에서 미산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 양옆에는 30~40년에 이르는 벚꽃 가로수가 줄 지어 서 있었다. 동일 노선의 다른 구간은 그 대로 유지된 채, 유독 추동마을을 관통하는 약 300m 구간만 선택적으로 벌목됐다. 그 자리 에 축대를 쌓고 참빗살나무와 배롱나무 신품 종으로 알려진 ‘핑크벨벳’ 등 2,300여 그루를 새로 심는 공사가 뒤따랐다. 하군은 ‘생육 상태 불량’, ‘보행 공간 확보’, ‘명품 가로수길 조 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질문을 지우기보다 오히려 키운다. 정말 생육 상태가 문제였다면 왜 같은 노선의 다른 구간은 멀쩡 히 남아 있는가. 객관적인 진단 결과는 무엇이 며,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설명이 빠진 자 리에 남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즉흥적 판단이 라는 의심뿐이다.

횡천면 천보식당 앞 보행로 80여 미터를 뜯어 내고 화단 조성과 나무 심기 공사를 펼친 ‘보 행친화적 예쁜 거리 조성’ 사업 역시 같은 궤 적을 따른다. 화단과 식재를 하는 1단계 사업 에 약 1억 원이 투입됐고, 구 국도 분기점에서 하동읍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380m 구간의 2 단계 ‘거리 조성’ 사업에는 약 3억 6천만 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금액 그 자체 에 있지 않다. 

수억 원 규모의 공공사업을 면 단위로 재배정 해 면장이 계약 당사자로 발주하는 방식이 적 법한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착공 이후에야 사 업 사실을 알게 된 상인과 주민들이 주차 불편 과 생활 불편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보행친화’를 내세우면서 정 작 주민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업이라면, 그 친화는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가.

결국 하동의 가로수·거리 사업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하나로 수렴한다. 관리와 보존으로 충 분했던 자산을 굳이 ‘전면 공사’라는 가장 비 용이 큰 방식으로 바꾸고, 주민 설명과 동의는 뒷전으로 미루며, 공사가 끝나면 ‘예쁜 거리’라 는 이름만 남겨 놓는 행정이다. 나무를 베어내 는 도구는 톱이지만, 신뢰를 베어내는 것은 설 명의 부재다. 군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나무 몇 그루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완성돼 있던 것을 허물어 놓고도 왜 지금이었는지, 왜 그 방식이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는 행정의 태 도 그 자체다.

줄어든 살림에도 멈추지 않는 소모

민선 8기 하동은 줄어드는 인구, 닫히는 상권, 청년의 유출… 이런 조건에서 행정의 선택은 더욱 냉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예쁜 거리’ 와 ‘명품’ 같은 사업은 멈추지 않는다. 쓸 예산 이 늘지 않았는데도 소모는 계속되고, 소모가 계속되니 진짜 필요한 투자는 늘 뒤로 밀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였느냐’다. 착공 이후에야 사 업을 알게 된 상가·주민들이 주차 불편을 이유 로 반발했다는 정황은, 최소한의 설명과 합의 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준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단 테두리 철재에서 녹이 슬었 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예쁨’을 말했지만, 관 리와 유지에 대한 고민은 시작부터 빈약했던 셈이다. 이런 결과가 반복되면 군민의 머릿속 에는 한 문장만 남는다. “또 돈만 썼다.”

하동의 진짜 미래는 어디에 달려 있는가. 청년 이 머물 일자리와 주거, 아이를 키울 교육과 돌봄, 노인이 안심할 의료·교통, 농어촌의 생 존을 지탱할 기반 시설… 이런 것들은 단숨에 ‘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야말로 하동의 내일을 만든다. 반면 몇백 미터 보행로를 뜯어내 화단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사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처럼 포장되기 쉽다. 문제는 그 ‘눈에 보이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투자’를 잠식한다는 데 있다.

군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결국 선택의 방향 때 문이다. 살림이 빠듯할수록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동의 행정은 자꾸만 반대로 간다. 줄어든 살 림에도 멈추지 않는 소모, 그 소모가 쌓일수록 하동의 미래는 더 멀어진다.

정찰가 없는 수목

더욱 의문스러운 대목은 수목 식재 구조다. 정 찰가도 없고, 품질 기준도 모호한 수목은 언제 나 ‘설계에 따라’ 대량으로 들어온다. 어떤 나 무가 얼마에 들어왔는지, 그 가격이 적정한지, 비교 가능한 기준은 군민들에게 충분히 공개 되지 않는다.

물론 특정한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명하지 않은 구조 위에서 비슷한 형태의 가 로수·조경 사업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군민 들이 혈세 낭비를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 스러운 반응이다. 의혹은 침묵에서 자라고, 불 신은 설명의 부재에서 커진다.

행정이 스스로 불신의 씨앗을 뿌려 놓고, 그 결 과를 군민의 오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예쁜 하동’은 허물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예쁜 거리’라는 이름은 듣기 좋다. 그러나 행 정은 이름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 그리고 책임 으로 평가받는다. 주민이 원하지 않는 사업을 왜 강행했는지, 기존 자산을 보존하는 선택지 는 왜 배제됐는지, 유지관리 계획은 왜 허술한 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수사도 군민을 설득할 수 없다.

하동의 가치는 콘크리트와 어린 나무에서 나 오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풍경과 시간, 그리 고 그 속에서 살아온 군민의 삶에서 나온다. 예 쁜 하동을 만들겠다면, 먼저 허물지 않는 행정 을 배워야 한다. 끊임없이 심고, 끊임없이 베어 내는 방식이 아니라, 지키고 관리하는 행정으 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쁜 거리 조성’이라는 말은 앞 으로도 계속해서 군민들에게 같은 뜻으로 들 릴 것이다.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신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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