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는 기울고, 하동은 비어 간다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2026.04.22 제 46 호
본문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국가는 기울고, 하동은 비어 간다
말의 정치가 아니라 삶을 살리는 정치가 필요하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는 말이 절로 나 온다. 경제는 무겁고, 장사는 어렵고, 청년들은 미래를 걱정 한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기업 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며,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흐름은 자 꾸만 그 반대로 가는 듯하다. 국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하겠 다고 나서고, 정치는 책임보다 구호를 앞세우며, 생산보다 분배의 말을 더 크게 외친다. 많은 국민이 나라가 지나치게 좌측으로 기울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을 대신하려 들면 사회는 약해진다. 규제가 많아지 면 기업은 움츠러들고, 시장이 막히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현금을 나누겠다는 말은 달콤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돈을 만들어 내는 산업과 경제가 약해지면 결국 모두가 더 어려 워진다. 나라를 살리는 힘은 선전이 아니라 생산에서 나온 다. 말이 아니라 일자리에서 나오고, 구호가 아니라 책임에 서 나온다.
작은 하동은 이런 국가적 흐름이 지방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는 축소판과도 같다. 중앙이 보여주 기 정치에 기울면 지방은 보여주기 행정으로 흐르기 쉽다. 나라가 말로 문제를 덮으려 하면 지역도 겉모습으로 문제 를 가리려 한다. 하동의 오늘이 바로 그런 모습을 닮아 있다.
하동의 위기는 숫자보다 군민의 한숨에 있다
하동의 위기는 통계표 안에만 있지 않다. 읍내 불 꺼진 상가, 하나둘 떠나는 젊은이, 아이 울음소리가 잦아든 마을이 하 동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준다. 군민이 정말 걱정하 는 것도 결국 이 한 가지다. 이대로 하동이 버틸 수 있겠느 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하동 행정이 보여 준 모습은 군민 의 절박한 삶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업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미 멀쩡한 곳을 다시 뜯고, 가로수를 베고, ‘예쁜 거리’와 ‘ 명품 경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 갔다. 물론 거리를 가꾸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순서가 잘못되면 문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사람은 줄어드는데 풍경만 손보고, 장사는 안 되는데 겉모 습만 바꾸고, 청년은 떠나는데 사진 찍기 좋은 공간만 만드 는 일이 과연 하동을 살리는 길인가. 군민이 묻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하동에 정말 급한 것은 따로 있다. 청년이 일할 곳, 아이를 키 울 환경, 어르신이 안심할 의료와 교통, 소상공인이 숨 쉴 상 권, 농민이 제값 받고 살 수 있는 유통 구조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더디게 가고, 눈에 잘 띄는 사 업만 자꾸 앞세우면 군민은 결국 신뢰를 거두게 된다. 군민 은 보도자료보다 삶의 변화를 먼저 본다.
하동이 살아나는 길은 겉치레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에 있다
하동을 살리는 길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 먼저 예산의 우 선순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군민의 돈은 군민의 삶을 살 리는 데 먼저 쓰여야 한다. 보여주기식 조경, 과장된 홍보, 정치적 효과가 큰 사업보다 일자리, 의료, 교육, 교통, 주차, 상 권 회복, 농업 경쟁력에 먼저 써야 한다. 예산은 사진을 남기 는 돈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돈이어야 한다. 군민이 체감하 지 못하는 사업은 아무리 번듯해 보여도 성공한 행정이라 할 수 없다.
또한 하동은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기보다, 이미 가 진 것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하동차, 평사 리, 화개장터, 청정 농수산물은 어디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자산이다. 문제는 보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물을 살릴 전 략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이제는 ‘예쁜 하동’보다 ‘돈이 도 는 하동’, ‘사람이 머무는 하동’, ‘청년이 돌아오는 하동’을 만 들어야 한다.
하동차는 단순한 특산품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차를 팔 고, 차를 체험하고, 차로 치유하고, 차를 문화로 키워야 한다. 섬진강과 지리산도 그저 스쳐 가는 풍경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룻밤이라도 더 머무르고, 한 번 온 사람이 다시 오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작은 숙박업, 로컬 식당, 공방, 생태 관 광, 치유 프로그램, 청년 창업이 함께 살아나는 구조를 만들 어야 한다. 하동의 미래는 큰 건물 몇 채에서 열리지 않는다. 작은 가게 하나, 청년 창업 하나, 잘되는 농가 하나가 이어질 때 비로소 열린다.
청년을 붙잡는 것은 말이 아니라 조건이다
청년은 감동적인 구호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고향을 사 랑하는 마음만으로도 버티지 못한다. 일할 곳이 있어야 하 고, 살 집이 있어야 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하고, 문화 와 교통이 따라줘야 한다. 청년 한 사람을 붙잡는 일은 돈 조 금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동에서 기술을 배우고, 장 사하고, 창업하고, 결혼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행정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건물을 짓기 전에 기회를 설계해야 한다. 겉모양을 바꾸기 전에 산업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지원금을 뿌리기 전에 민간이 살아날 토양 부터 만들어야 한다. 청년 정책은 행사장에서 박수받는 정 책이 아니라, 5년 뒤에도 그 청년이 하동에 남아 있게 만드 는 정책이어야 한다.
다시 세워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신뢰다
하동에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신뢰다. 행정 이 군민의 신뢰를 잃으면 어떤 사업도 힘을 받기 어렵다. 공 정한 인사, 투명한 정보 공개, 열린 소통, 군의회와 군민을 존 중하는 태도는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행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역이 작을수록 권력은 더 낮아져야 한다. 군수실 문턱이 낮아지고, 군민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반대 의견 속에서도 답을 찾는 행정이어 야 공동체가 다시 살아난다.
지금 하동에 필요한 것은 본질을 놓친 정치가 아니다. 겉가 지만 손보는 행정으로는 지역을 살릴 수 없다. 사람을 살리 고, 산업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길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길만이 하동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나라가 왼쪽으로 기울수록 지방은 더 단단한 상식 위에 서 있어야 한다. 하동이 다시 일어서려면, 구호의 정치가 아니 라 생산의 정치가 필요하다. 전시의 행정이 아니라 실사의 행정이 필요하다. 편 가르기의 권력이 아니라 군민을 하나 로 묶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동의 내일은 멀리 있지 않다. 허상을 걷어 내고 본질로 돌 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군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먹고사 는 문제를 먼저 풀고, 신뢰를 다시 세울 때 하동은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이제 하동은 말이 아니라 결과로, 겉모양이 아니 라 삶의 변화로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