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동의료원, 건물만 지으면 다 해결된다는 착각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제 37 호
본문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하동의료원, 건물만 지으면 다 해결된다는 착각
“반대냐 찬성이냐”를 넘어, 숫자와 현실을 차분히 따져보자
공공의료 확충, 누가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하동군보건의료원 기공식이 끝났다. 군청은 응급의료 접 근성 개선과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의료원 건립 이 군민의 오랜 염원이라 강조한다. 실제로 군이 밝힌 계 획은 7개 진료과에 40병상을 갖춘 공공병원을 2027년까 지 완공한다는 구상으로, 규모만 놓고 보면 그럴듯해 보 인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의료원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 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듯이 지금 하동에서 논쟁해 야 할 지점은 “졸속 추진이냐 정상 추진이냐”, “이 방식과 이 규모가 과연 하동 현실에 맞는가”에 가깝다.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다 만 그것이 하동이라는 구체적 지역 조건 위에서 현실적 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지금의 추진 방식이 과연 합리적 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진주·광양 안 가도 된다”는 약속, 정말 그런가
기공식과 군청 홍보자료에서 반복되는 문구 가운데 하나 가 “이제 진주·광양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 치 하동읍에 의료원이 생기면 진주·광양 종합병원에 갈 이유가 없어질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하동의 지리 와 생활권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성립하기 어려운 단순 화된 주장이다.
옥종·북천·진교의 상당 지역은 이미 하동읍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진주 시내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과 교통 여건상 더 효율적이다. 악양·화개·금남 지역 또한 구례·광양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생활 패턴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러한 지역에서 하동읍 보건의료원까지 오 는 시간과, 현재처럼 진주·광양으로 가는 시간을 비교하 면 하동읍이 더 가깝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의료 수준이다. 진주·광양의 종합병원은 다 수의 전문의, 중환자실, 특수검사 장비, 24시간 회진체계 를 갖춘 2·3차 의료기관이다. 반면 하동의료원은 군청 계 획대로 7개 진료과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전문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지방 의료 현실이다. 이웃 산청군 의료원의 경우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결국 중증·복합질환 환자의 경우 여전히 진주나 광양, 순천의 상급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다 솔직한 설명이 필요하다. “진주·광양 안 가도 된다”가 아니라, “모든 것을 대신하진 못하지만 경· 중증 환자, 1차·2차 응급환자까지는 군내에서 조금 더 빨 리 볼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시도”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과장된 약속은 결국 군민의 기대를 키우고, 나중 에는 실망과 불신으로 돌아온다.
연간 수십억 적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동군은 보건의료원 운영에 매년 약 2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현재 군은 하동중앙 의원에 5억 4백만 원, 군민산부인과에 5억 원, 합계 10 억 4천만 원을 매년 지원하고 있다. 군청은 “여기에 10 억 원 정도만 더 보태면 연간 적자 보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더 큰 적자가 날 가능성도 충분 히 거론된다. 그럼에도 군이 제시한 추정치인 ‘연 20억 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따져봐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이미 매년 10억 원대 중반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그 효과 가 얼마나 있었는지 가시적인 자료가 거의 없다.
응급환자 이송 시간이 줄었는지, 야간·휴일 진료 공백이 해소됐는지, 분만 안전성이 개선됐는지 군이 객관적으로 입증한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사업의 성과조차 평가되지 않은 상황에서, 훨씬 큰 조직과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의료원 체계가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을 것 이라 믿으라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연 20억 원이라는 금액은 결코 가벼운 규모가 아니 다. 이 예산이면 구급차 확충, 전문 구급대원 양성, 상급 병원과의 협진 강화, 야간·휴일 순환전문의 배치, 고령층 재택의료 확대 등 더 넓은 군민에게 직접적 혜택을 주는 선택이 가능하다. 특히 면단위 고령 인구가 많은 하동에 서는, 대형 건물보다 이동·이송 체계 개선이 더 빠르고 현실적인 생명선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군 민의 안전을 실제로 얼마나 높였는가”, 그리고 “같은 금 액으로 더 나은 선택이 가능했는가”이다.
345억 사업, 국비 조금 받았다고 무조건 추진해야 하는가
이번 사업의 총사업비는 345억 원이다. 그러나 군청이 홍보해 온 것과 달리, 지금까지 실제로 확보된 국비는 특별교부세 약 8억 원이 전부다. 기획재정부나 복지부 의 본예산 반영도 확정되지 않았고, 도비 역시 배정된 금 액이 없다. 그럼에도 군청은 마치 수백억 원의 외부 재원 이 이미 마련된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며 사업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이는 군민의 판단을 흐리는 위험한 접근이다. 외부 재원 확보가 사실상 미미한데도 “이미 시작했으니 되돌릴 수 없다”는 여론을 유도한다면, 결국 부족한 재정은 군비와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이 지방소멸대응기금이다. 하동군은 의료원 건립에 이 기금을 대거 투입하려 하고 있으나, 이 기금은 청년 주 거·일자리·가족정착 등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한 목 적 재원이다. 이를 건물 신축에 집중 사용하면 정작 하동 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인구·정착·일자리 정책 은 힘을 잃게 된다.
청년이 떠나는 이유는 의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자 리와 선호하는 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 동군은 이러한 핵심 과제를 제쳐 두고 기금을 건축비로 먼저 소모하려 한다. 더구나 의료원은 개원 후에도 매년 적자 보전이 불가피하다. 이는 단순한 건축비 문제가 아 니라 하동의 재정 구조 전체를 장기적으로 훼손할 수 있 는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군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이 결정이 과 연 최선인지, 군민과 함께 다시 따져보고 필요하다면 조 정할 수 있는 용기—그것이 지금 하동군정이 회복해야 할 기본이다.
하동의 미래는 건물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냉정한 숫자, 절차의 정당성, 그리고 군민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 해 비로소 단단해진다. 이제라도 군정은 “속도”보다 “정 확한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군민을 위한 길이 며,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다.
군의회 경시와 지방자치의 후퇴
군 의회는 실시설계비 삭감 당시부터 줄곧 “공공의료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 가능성과 재정 부담 을 따져보자”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는 대형 공공사업을 앞두고 당연히 요구되는 검증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견해 차원을 넘어서, 하승철 군수가 군민의 대표기관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가 드러난 결정적 장면이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하루 앞둔 밤 11시, 군청은 갑작스럽게 일정 변경을 통보했다. 군민 세금을 심사하는 예산 심의는 지방의회의 핵심 기능이며 그 어 떤 행사보다 앞서야 할 절차다.
그런데 군청은 같은 시간대에 보건의료원 기공식을 잡 아 놓고, 출석해야 할 공무원들을 행사장으로 이동시켰 다.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의회를 사실상 배제한 결정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의원들이 “민선 40년 만에 처 음 겪는 일”이라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런 이 유에서다. 사전 협의 없이 공무원들이 예산 심의를 포기 한 채 행사에 집중하도록 한 것은 지방자치의 기본 질서 를 흔드는 일이다. 군청이 의회의 역할을 이렇게 경시하 는 순간, 행정은 이미 민주적 균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다. 기공식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법정 절차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 군수는 자신의 행사와 홍보 효과가 군민 삶 과 직결된 예산 심의보다 더 우선인 듯 행동했다. 이는 보 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이며, 억제와 숙고가 필요한 공공 사업을 개인 성과처럼 밀어붙이려는 위험한 태도다. 의 회를 들러리 취급하는 순간 행정은 독선으로 흘러간다. 예산 심의를 가볍게 여기는 행정은 결국 군민의 세금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생략한 행정은 군 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이는 장기적 재정 부담과 군민 안전이 걸린 사업일수록 더 치명적이다. 제대로 묻고 따 지지 않는 공공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군민 세 금이 수백억 원씩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절차적 정당성과 책임성, 투명성이 무엇보다 먼저 확보돼야 한다. 지금의 하동군정은 그 순서를 거꾸로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계산과 군민과의 깊은 대화
정리하자면, 하동의료원 논쟁은 공공의료 체계 확충을 부정하려는 싸움이 아니다. 쟁점은 “이 방식이 하동에 최선인가”, “투입되는 돈 대비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 “다른 대안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가”, “향후 지속 가능한가”에 있다.
이미 첫 삽은 떴고,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부터라도 군청은 군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의 료원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매년 투입해야 할 적자 보전 규모, 다른 대안과의 비교, 인구정책과의 상충 문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과장된 약속이나 일 방적 추진으로는 군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건물만 크다고 해서 하동의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 숫자를 차분히 계산하고, 군민과 깊이 대화하며, 필 요하다면 속도를 늦추더라도 방향을 바로잡는 것. 지금 하동이 필요한 것은 찬성과 반대의 구도가 아니라, 미 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까지 함께 고민하는 냉철한 합리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