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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행정, 섬진강의 눈물을 닦아라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제 1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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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행정, 섬진강의 눈물을 닦아라


한때 은빛으로 반짝이던 섬진강,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한 시절 섬진강은 하동 군민이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 던 ‘생명의 보고(寶庫)’였다. 강물은 수정처럼 맑아 손 으로 떠 마셔도 될 만큼 청정했고, 햇빛 아래 반짝이 는 백사장은 마치 진주 가루를 뿌려놓은 듯 황홀한 빛 을 자랑했다. 여름철이면 아이들은 맨발로 모래사장을 달리다 이내 물속으로 뛰어들며 시원하게 물장구쳤고, 이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얼굴엔 평화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가을 무렵이면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 아 힘차게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장관이 펼쳐졌고,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자연이 빚어내는 신비에 경외심 마저 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섬진강은 과거의 찬란함과 거리가 먼 모습이다. 토사가 강바닥과 모래사장을 뒤덮어 본디의 빛을 잃었고,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해 염분 농도가 높 아지며 강물은 사실상 ‘바다화(化)’ 현상을 겪고 있다. 이것은 상류 광양 다압 취수장에서 하루 40만 톤 이상 을 빼가는 데다, 상류 주암댐에서 방류량이 크게 줄어 든 것도 하류 쪽 바다화를 한층 가속시키는 중요한 원 인으로 지목된다. 이로 인해 투명했던 물빛은 흐릿해 지고, 예전의 민물 생태계는 점차 무너져가고 있다. 그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하동 사람들에게 섬진강은 더 이상 자랑과 풍요의 상징이 아니다. 강물 위로 번지 는 묵직한 침묵이, 이곳에 깃든 수많은 추억과 생명의 흔적이 희미해져만 간다는 비통한 신호처럼 다가온다.  사실 하동군민, 특히 섬진강 인근 군민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섬진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자락쯤은 품고 있다. 찌는 더위도 잊게 하던 백사장, 발걸음마다 부서 지던 하얀 모래 알갱이, 물길을 따라 시원하게 흐르던 바람…. 그런 기억들이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자각은, 이 강을 생계와 일상의 터전으 로 삼아온 이들에게 더욱 쓰라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재첩만의 문제가 아닌, 하동 생존의 총체적 위기

섬진강을 이야기할 때면 단연 먼저 떠오르는 존재가 재 첩이다. 이 작은 조개는 2급수 이상의 맑고 깨끗한 물에 서만 번성하기에, 그 자체가 강의 청정도를 상징한다. 한때 재첩 덕분에 지역 식당들은 북적였고, 하동을 찾 는 관광객들도 재첩 국이나 재첩 무침을 맛보며 이곳 자연이 준 혜택에 감탄하곤 했다. 이른 아침이면 “재첩 국 사이소!”를 외치며 재첩국이 담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골목골목 돌아다니던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뜨끈 한 국물이 필요할 때면 군민들은 막걸리 한잔 후 속쓰 림을 재첩국 한 그릇으로 시원하게 달래곤 했고, 그 풍 경과 맛은 하동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녹아 있었다. 

실제로 재첩 산업은 하동의 사회·문화·경제에 없어서 는 안 될 버팀목의 하나였다.

하지만 수질이 나빠지면서 재첩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 경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재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을 오르내리며 생태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주던 은어, 참게, 장어, 벚굴, 징거미 등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들은 단순한 ‘특산물’이 아니라, 섬진강 생태계를 지탱 하는 연결고리이자 하동군의 경제·사회·문화에 녹아 든 중요한 존재였다. 생물이 줄어든다는 것은 강의 건 강성과 직결되고, 곧 지역사회의 활력마저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농업에 미치는 바다화의 영향이다. 목도 들판과 신월, 두곡, 화심 등 하동의 주요 농업 지 역은 지하수 염분 농도가 올라가면서 염해(鹽害)가 심 각해졌다.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시들어버리 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시설 농업마저 위협받 고 있다. 하동군은 대규모 공업 단지나 대체 산업이 풍 부하지 않은 지역이다. 농어업이 무너지면 관광과 상권 도 따라 침체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지역사회 존립 자 체를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염해로 인한 피해 면적이 매년 커지고 있다는 것은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하수 염도가 높아질수록 재배 가능한 작물의 범위가 좁아지고, 농가들은 빚을 내 시설 투자를 감행해 보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문제다. 이 같은 염해 피해는 결국 상수도 취수원에도 영향을 미쳐, 하동읍의 취수원이 악양 외둔마을 앞에서 화개면 검두마을 앞 섬진강으로 수 킬로미터나 상류로 이설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미 재첩의 서식 환경이 악화되고 어획량이 줄어든 현실이 농어민들에 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는데, 염해까지 겹치며 비닐하 우스 등 시설 농업 기반마저 흔들리니 하동군민의 근심 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혁신 평가와 수상은 허상

하동군은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군에서 내세우는 것은 ‘수상(受賞) 경력’과 ‘우수 등급’ 같은 평가 성적표뿐이다. 최근 ‘한 국지방자치학회 지방행정혁신대상’을 수상했다며 대 대적으로 홍보를 벌였고, 행정안전부 혁신평가에서 우 수 등급을 얻었다고도 자랑한다. 그러나 이 상과 평가 가 과연 객관적인지, 그리고 군민의 실질적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행정안전부 혁신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는 지자체가 전국 243개 중 4분의 1 이 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뛰어나서가 아 니라 흔히 볼 수 있는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지방자치학회’라는 사설 기관으로부터의 ‘수상’은 후원금 문제나 심사의 불투명성이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상황에서, 이를 군민 삶의 개선보다 우선 에 두는 행정 태도는 ‘혹세무민(惑世誣民)’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여주기식 홍보와 치장에 매달리는 동 안, 정작 섬진강은 점차 황폐해지고 농경지는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동군은 사실상 활용되지 않고 관리비만 낭비되는 공공 건물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 고, 평생교육관 등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겠다며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군민들이 절박하게 호소하는 것은 “섬 진강을 되살리고 군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어민을 지원할 구체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지 만, 군정은 반대로 “건물을 지어 지역 발전을 이룰 수 있 다”는 식의 관행적 논리를 내세운다.  

시위소찬(尸位素餐)이란 직위를 차지하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의 비판이다. 지금 하동군이 위기에 처한 민생 현장을 뒤로한 채, 상 하나 받은 것을 대단한 업적으로 포장하는 행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상 이 실질적 대책을 대신해 주지 않고, 평가 등급이 염해 로 죽어가는 들판을 되살려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토 록 집착하는가. 군민이 체감할 수 없는 ‘혁신’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다.

진정한 변혁은 섬진강 복원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하동군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 째로, 섬진강 바다화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 파악 과 데이터 축적이 시급하다. 광양 다압 취수장에서 하 루 40만 톤 이상 빼가는 물, 상류 주암댐의 방류량 축소 가 하류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산출하고, 그 양 이 더 늘어나면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질지 를 수치와 그래프로 제시해야 한다. 재첩 감소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맑고 깨끗한 물속에서만 사 는 은어·참게 등이 사라짐으로써 관광 매력이 떨어지 는 손실 규모, 염해가 가져오는 농작물 피해액 등을 종 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동군이 환 경·농업·수자원 전문가, 시민단체, 어업인·농업인 대표 등과 함께 ‘섬진강 공동조사위원회(가칭)’ 같은 기구를 설립해 신뢰할 만한 조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둘째로, 그렇게 마련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앙정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 한국수자원공사 등을 상대로 강력 하게 문제 제기에 나서야 한다. 헬싱키 규칙(Helsinki Rules)처럼 “하천의 상·하류 간 공정한 물 이용”을 원 칙으로 삼는 국제 규범이 존재하지만, 섬진강이 국내 하천이라는 이유로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은 분 명 개선 여지가 있다. 하동군이 직접 협상력을 키우지 않으면, 무분별한 상류 취수와 방류량 축소로 인한 바 다화와 염해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셋째로, 기후변화 시대를 대비해 장기적인 농어업·관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진행된 생태계 파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더 늦기 전에 피해를 최소 화하고 점진적 복원을 시도해야 한다. 예컨대 염분에 덜 민감한 작물 품종 연구, 친환경 양식 기법 도입, 재첩 등 사라진 어종을 되살리는 치패 방류 사업, 에코투어 리즘(생태관광) 프로그램 개발 등을 함께 추진할 수 있 다. 하동군은 기후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 역’이 되도록, 이 문제를 단지 현재의 곤경이 아닌 미래 성장 동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군민과의 소통이다. 하동군은 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어떤 정책이 어느 시 점에 시행되는지를 군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 다. 상류 취수와 바다화 현상이 지역에 미치는 악영향 을 다양한 채널로 알리고, 함께 머리를 맞댈 때 ‘행정혁 신’이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보여주기식 홍보나 무 분별한 수상 경력 나열은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한 다.

결국, 강이 살아야 하동이 산다. 섬진강이 염해와 오염 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보여주기용 ‘혁신’이 아니라 실 질적 조치와 책임감 있는 행동이 시급하다. 혹세무민( 惑世誣民) 행정으로는 결코 군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 으며, 바다화가 가속되는 강을 되살릴 수도 없다. 우공 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듯, 한 발짝씩 꾸준히 나 아간다면 언젠가 섬진강에는 다시 은빛 물살이 흐르고, 재첩과 은어, 징거미, 참게와 장어가 도약하는 장관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생명의 보고’라 불리던 아름다운 섬진강이 과거의 자부심을 되찾고, 하동군민 또한 고향의 강을 맑고 풍성하게 가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행정 혁신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두 번의 시상식과 평 가 등급 따위가 아니라, 군민이 절박하게 호소하는 삶 의 현장을 지켜내는 길이야말로, 지금 하동군이 걸어야 할 유일한 미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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