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 미래 자금, 군수의 선심정치에 잠식되다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제 32 호
본문
아이들 미래 자금, 군수의 선심정치에 잠식되다
역대 최대 장학기금, 빛을 잃다
한때 하동군장학재단(이하 재단)은 군민들의 정성으로 곳 간을 가득 채웠다. 전임 윤상기 군수와 향토 인사들의 헌신 으로 매년 수억 원대 장학기금이 모였고, 윤 군수는 모친상 과 부인상 때 받은 조의금마저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기업 인들 역시 거액을 쾌척하며 후학양성에 힘을 보탰다. 그 결 과 2022년 무렵 재단 기금은 약 200억 원에 달했다. 작은 농촌 군의 재단으로서는 기적 같은 성취였다. 군민들의 땀 방울이 빚어낸 이 자산은 지역 교육의 등불이자 자부심이 었다. 그러나 그 등불은 하승철 군수 취임 이후 급속히 희 미해지고 있다.
기부 급감과 현금 살포로 재단 적자 전환
2022년은 윤 군수와 하 군수가 반반씩 임기를 나눈 해였다. 그해 실적은 모금 17억 8천만 원, 집행 11억 9천만 원, 잔 액 5억 8천만 원이었다. 상반기 윤 군수의 모금 성과가 연 간 실적을 떠받쳤지만, 하반기부터는 기탁 행렬이 끊기고 모금 동력이 꺼졌다. 2023년에는 모금 7억 8천만 원, 집행 7억 9천만 원으로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윤 군수 재임 기인 2019~2021년 매년 15억~20억 원대 수입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2024년에도 모금 8억 3천만 원, 집행 13 억 원으로 5억 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 지출 규모가 줄 었음에도 수입이 급감하니 적자가 불가피했다. 전임이 수 년간 쌓아 올린 흑자를 불과 몇 해 만에 갉아먹은 것은 안 이한 운영의 상징이다. 현금성 장학사업 확대는 배보다 배 꼽이 커진 격이고, 기부는 줄어들어 재단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했지만, 곡간을 메울 노력 없이 퍼주기만 한다면 남는 것은 텅 빈 곳간과 빛 좋은 개살구뿐 이다. 결국 미래 세대가 받아야 할 몫이 축나고 있다는 현 실이 더욱 뼈아프다.
입학축하장학금, 선거법 지뢰밭의 선심행정
하 군수 취임 후 재단이 도입한 대표 정책은 2024년 시작된 ‘입학축하장학금’이다. 초·중·고 신입생 모두에게 각각 30 만, 50만, 100만 원을 지급하며 2024년과 2025년 두 해 동안 총 7억 원이 넘게 나갔다. 2024년에는 신입생 544명에게 총 3억 5천만 원이 지급되었고, 2025년에도 약 3억 6천만 원이 집행되었다. 언뜻 교육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률적 현금 살포에 가깝다. 성적 우수자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 장학과 달리, 누구나 동일하게 받는 축하금 성 격이 강해 장학재단의 설립 취지와 어긋난다.
더 심각한 것은 선거법 저촉 가능성이다. 공직선거법은 선 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금품 제공을 강하게 금지한다. 핵 심은 세 가지 조항이다. 첫째, 제112조(기부행위의 정의)는 선거나 선거구민을 상대로 한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의 이 익 제공 또는 그 의사표시를 ‘기부행위’로 폭넓게 규정한 다. 둘째, 제113조(후보자 등 기부행위의 금지)는 ‘후보자’뿐 아니라 ‘후보자가 되려는 자’에게까지 기부행위를 금지 하고, 가족·선거사무관계자 등을 통한 우회 제공도 금지한 다. 셋째, 제115조(법인·단체의 기부행위 금지)는 법인·단 체가 선거구민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 조항들은 ‘직접·간접’ 모두를 포괄하고, 선거 에 관한 영향이 인정되면 대상과 통로를 불문한다는 점에 서 강행 규정에 가깝다.
문제의 입학축하장학금은 이 요건들과 위험하게 맞물린 다. 우선 사전 홍보–사후 정관 개정–재단기금 집행이라 는 절차는 ‘홍보 먼저, 규정 나중’이라는 우회 구조를 형성 한다. 선거를 염두에 둔 ‘금품 제공의 의사표시’가 먼저 공 개되고(제112조 취지), 이후 재단을 통로로 현금이 지급되 었다면, 이는 제113조의 후보자(되려는 자) 기부행위 금지 와 제115조의 단체 기부행위 금지 사이를 오가며 제한을 회피한 것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장이 자신의 명의·직위를 활용해 대대적으로 홍보 한다면, 그 자체가 선거에 관한 영향을 목적으로 한 의사 표시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더구나 선거법은 피선거권자 (군수)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삼자나 기관을 통하 여 현금, 상품권, 물품 등을 기부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 제하고 있다.
입학축하장학금은 새로 도입된 보편 급부이고, 하동군의 대대적 사전 홍보 후에 재단 정관을 개정해 집행되었다는 점에서 위법을 면하기 위한 상시·계속성과 독립성 요건이 약하다. 더구나 하동군에는 입학장려금을 군 예산으로 지 급할 수 있는 조례가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재단 기금을 사용한 것은 예산 절차를 건너뛴 우회 지급으로 해석될 여 지가 있으며, 이는 제115조가 금지하는 단체(재단) 기부행 위의 통로화 의혹을 더욱 키운다.
정리하면, 입학축하장학금은, 공직선거법 제112·113·115조의 취지에 비추어 법적 저촉 가능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시점의 대대적 홍보–우 회 집행–보편 현금 지급의 삼박자는 선관위 유권해석과 사법 판단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크다. 아이들의 이 름으로 포장된 이 보편급부가 결국 선거에 관한 금품 제공 으로 의심받는 순간, 재단은 본래 목적을 잃고 법적 리스크 의 장으로 전락한다. 더구나 실제로 돈을 수령하는 이는 대 부분 지역 유권자인 학부모들이다. 사실상 유권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이 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품 제공을 엄격히 금지 한 공직선거법의 입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육의 이름으로 곡간을 비우는 선심정치는 법과 원칙 앞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
해외연수 사업의 밀실 특혜 의혹
2024년 새로 시작된 중·고생 해외어학연수 사업은 시작부 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수억 원이 투입되는 굵직한 사업임 에도 불구하고,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업체가 위 탁 운영사로 선정된 것이다. 이 업체는 해외연수 실적조차 없었음에도 평가 과정에서 파격적인 가산점을 받아 낙찰 됐다. 더구나 지역에서는 이 업체가 하 군수 선거캠프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인물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며,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주소지를 하동으로 옮겼다는 내막까지 전 해지고 있다. 군민들의 눈에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입찰 점수 산정 과정은 불투명했고, 가산점 부여는 법령 취 지에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경쟁 업체는 더 높은 정 성평가와 가격평가 점수를 얻었음에도 단지 ‘관외 업체’라 는 이유로 탈락했다. 군민들은 이를 두고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결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연수 과정에서도 문제는 이어졌다. 학생들은 준비 부 족으로 안전 관리와 학사 운영에서 불편을 겪었고, 인솔 교 사들마저 부실한 지원에 불만을 표했다. 교육이라는 본질 적 목적은 뒷전으로 밀리고, 특정 업체 챙기기에 급급했다 는 의심이 증폭되었다. 글로벌 인재 육성을 외친 사업이 실 상은 일부의 이익으로 귀결된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자초 했다.
더 큰 문제는 책임 회피다. 재단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해명만 되풀이했지만, 투명성을 의심받는 순간 공익 법인 으로서 신뢰는 무너진다. 수억 원대 기금이 석연치 않은 절 차 속에 흘러갔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군민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군민들이 피땀으로 채운 장학기 금이 이렇게 허술하게 다뤄진다면, 앞으로 누가 기꺼이 장 학금 기탁에 나서겠는가?
군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재단 이사회
재단 이사회 운영 역시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많다. 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 군수는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왔다는 전언이 있고, 이로 인해 주요 결정에서 군수의 입김 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군 행정과장은 재단 의 당연직 상임이사이고, 더구나 재단의 실무를 관장하는 사무국장은 하 군수 선거캠프 관계자로 일했던 인물로 알 려져 있어, 재단 운영에 대한 군수의 영향력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금 운용 또한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다. 수십억 원이 농협·축협 등 특정 금융기관에만 집중 예 치됐고, 지역민이 주로 이용하는 하동신협에는 단 한 푼도 맡기지 않았다. 공공기금은 원칙적으로 지역 금융권 전반 에 분산해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도 특정 금융권에만 치우친 결정은 편향과 특혜 시비를 낳고 있다. 작은 불공정이 큰 불신을 키운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분명 히 보여줄 예는 없다.
누구를 위한 장학재단인가
하동군장학재단은 원래 군민들의 십시일반 정성이 모여 탄생한 미래 자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과 군민이 아 닌 권력자와 주변인의 쌈지돈처럼 취급되고 있다. 퍼주기 식 돈 풀기는 잠시 환호를 살지 모르나, 그 대가는 고스란 히 미래 세대의 짐으로 돌아온다. 군민들은 과유불급을 안 다. 기탁자는 허탈해하고, 학부모는 불안을 느끼며, 양심 있 는 목소리들은 분노를 키우고 있다.
하 군수에게 묻는다. 이런 방식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재 단이 존속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뒤엎 을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방향타를 고치지 않으면 인재 육성의 대의는 침몰하고, 군수 본인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사필귀정이라 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려면 장학재단을 군민 품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것 이 최소한의 도리이자 지도자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