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조 원의 세금은 어디로 갔을까? … 하동군 ‘잠자는 3천억’의 역설을 고발한다

제윤경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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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원의 세금은 어디로 갔을까? 

    … 하동군 ‘잠자는 3천억’의 역설을 고발한다


제윤경 전 국회의원


하동군 행정은 입버릇처럼 “재정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군민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행정의 논리를 수긍하며, 꼭 필요한 복지가 줄어들고  숙원  사업이  미뤄지는  불편을  묵묵히  감내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동군의 ‘진짜 가계부’인 결산서를 펼쳐보는 순간, 우리는 황당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동은 가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방행정의 실력은 '얼마를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 마나 적기에 썼는가'로 증명됩니다. 인근 남해군이 나 산청군은 잉여금 비율이 10~15% 수준입니다. 벌어들인 돈을 주민을 위해 부지런히 썼다는 뜻입 니다.

반면 하동군은 어떻습니까? 2024년 결산 기준 잉 여금 비율이 무려 30%에 육박합니다. 일 년에 1조 원 가까운 돈이 들어오는데, 그중 3,000억 원을 쓰 지 않고 남겼습니다. 

남해와 산청이 주민을 위해 10원이라도 더 쓰려 고 민할 때, 하동군은 그들보다 3배나 많은 돈이 잠자 고 있습니다. 이건 재정 건전화가 아니라, 예산이 돌아야 할 길을 막아버린 ‘재정 동맥경화’입니다.

복지는 전국 최하위권, 물 문제로 고통받는 군민을 외면한 ‘3천억의 침묵’

하동군의 ‘돈 없다’는 거짓말이 가장 잔인하게 드러 나는 곳은 군민의 생존과 직결된 생활 현장입니다. 2023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하동군의 복지비 지출 규모는 전국 82개 군 단위 지자체 중 70위로, 꼴찌 에서 12번째입니다. 

여러 마을이 상하수도 설비 부족과 오‧폐수 처리시 설 부재로 인해 삶의 기본 요건인 물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군은 재정 부족을 핑계로 이들의 절 박한 외침도 외면해 왔습니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마저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 로 쥐어짜는 동안 3,000억 원의 잉여금을 쌓아 올 린 것은, 행정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숫자로 증명한 잔인한 역설입니다. 하동군 인구 1인당 연 간 약 2,500만 원, 4인 가구 기준으로는 1억 원에 가 까운 재원이 매년 하동군으로 유입되는 것임에도, 그 거대한 자금은 실핏줄처럼 돌아야 할 마을 현장 을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최근 군수는 여러 언론을 통해 의회의 예산 삭감 을 두고 “군정이 마비될 수준”이라며 공포를 조성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삭감된 300억 원은 세입 결산액의 3%에 불과하며, 그조차도 대부분 부실하게 설계된 시설비와 건축비입니다.

1조 원 살림에서 3% 삭감이 군정을 마비시킨다는 위협은 말 그대로 비약입니다. 3,000억 원이나 안 쓰고 남긴 행정이 300억 원 삭감을 탓하는 건 어불 성설입니다.

‘돈 없다’ 던 3년, 선거 앞두고 터진 ‘공사판’의 정체

잉여금 추이를 보면 의문은 더 커집니다. 2020년 1,500억 원대였던 잉여금은 현 군정이 시작된 2022 년을 기점으로 3,253억 원으로 폭증했습니다. 단 2 년 만에 남는 돈이 두 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일부 러 예산을 세우지 않고 돈을 남긴 것은 아닌지, 황 당한 의심마저 듭니다.

더 기막힌 건 지금 하동의 풍경입니다. 3년 내내 돈 없다던 하동군이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군 구석 구석을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급한 민생 은 외면하더니 선거철이 되자마자 여기저기 땅부 터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남은 예산을 털어내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 아엎던 구태가 하동에서 재현되는 것 같아 씁쓸합 니다. 3년간 매년 3,000억 원씩 남기던 그 ‘지독한 알뜰함’이, 혹시 선거 전 선심성 공사 예산을 집행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거용 몰아쓰기’의 구태 끝내고, 하동의 실핏줄 살리는 유능한 행정으로

지금 하동에는 집권 내내 세금을 쌓아만 두다가, 선 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몰아쓰기’를 하는 기이한 행 정이 아니라, 유능하고 투명한 행정이 절실합니다. 예산은 단순히 종이 위의 숫자가 아닙니다. 누군가 에게는 생명과 같은 깨끗한 물이고, 어르신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줄 따뜻한 돌봄이며, 청년에게는 하 동에 머물게 하는 희망의 끈입니다.

1조 원의 예산을 쥐고도 복지 순위는 바닥을 기고, 임기 말에야 선심 쓰듯 토목 공사를 벌이는 행태 는 전형적인 ‘무능할 뿐 아니라 의심스러운 행정’ 의 표본입니다. 

잉여금은 세금을 아꼈다는 ‘훈장’이 아니라, 주민에 게 제때 돌려주지 못한 ‘부채’의 증서입니다. 군민 1인당 2,500만 원, 1조 원의 세금. 이 거대한 자금이 지역의 실핏줄까지 유능하고 정직하게 흐르는 하 동을 꿈꿉니다. 

금고 속에 갇힌 돈이 아니라 주민의 삶 현장으로 흐 르는 예산만이 하동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 입니다. 하동의 돈이 하동군민을 위해 제대로 도는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요구해야 할 새로운 행 정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