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하동은 기본소득을 못 받게 되었나?

제윤경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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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동은 기본소득을 못 받게 되었나? 

‘돈이 없다’는 마법 같은 핑계, 이제 그만 듣고 싶지 않습니까?


제윤경 전 국회의원

“하이고마. 이제 째깐하게, 계우... 숨 좀 돌리겠고마.”


노량 바다 건너 남해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비명입니다. 하지만 섬진강 이편, 우리 하동 군민에게 그 소리는 축하보다 먼저 시린 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듭니다.

남해 군민들은 이제 매월 15만 원, 4인 가족이면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에 선정된 덕분입니다. 신청 창구마다 활기가 넘치고 골목 상권이 들썩인다는 소식에 하동 군민들 사이에서는 “주소지를 남해로 옮길 걸 그랬나” 하는 서글픈 농담까지 오갑니다. 이웃의 경사를 시기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을 넘어선, 행정에 대한 깊은 ‘허탈함’입니다.

남해는 ‘뛰었고’, 하동은 ‘신청도 안했습니다’이번 공모는 전국 49개 군이 참여해 8.2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선정된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국회와 정부 부처를 제집처럼 오가며 사활을 걸었습니다. 지자체의 절실함이 곧 군민의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남해는 결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동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하동군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군의회가 발의한 기본소득 조례안에도 ‘부동의’ 의견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군민이 절박한 정책을 요구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답은 늘 똑같습니다.


“빚 갚느라 돈이 없다” 


군민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게 발길을 돌립니다. “군에 돈이 없다 안 카나.” 마치 모든 질문을 잠재우는 주문처럼, 이 말은 너무나 쉽고 무책임하게 반복됩니다. 이 ‘마법 같은 핑계’를 하동 군민은 도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합니까.

정말 예산이 없어서였을까요? 하동군 행정의 우선순위를 보면 의문이 남습니다. 산과 나무가 지천인 하동에서, 보행로까지 막아가며 나무를 심고, 다시 뽑고, 또 심는 사업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수십억 원이 투입되는 조경사업에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군민의 삶에 직접 보탬이 되는 기본소득에는 왜 ‘재정 부담’이라는 방패부터 세우는 것입니까. 대다수 군민이 행정의 눈높이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입니다.

‘예쁜 하동’보다 ‘먹고살 만한 하동’이 먼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보고 생중계에서도 언급되었듯, 정부는 농어촌 유휴부지를 활용한 ‘햇빛 소득마을’ 사업을 대폭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3만 7천여 개 마을 중 올해 500곳을 시작으로, 마을 단위 태양광 사업의 이익을 주민이 공유하는 모델을 확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재정 지원을 넘어, 국책 사업의 수익을 주민에게 배당하여 소득의 근본을 강화하겠다는 시대적 선언입니다.

이제 국책 사업은 소수의 수익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지역의 자원으로 만들어지는 산업의 이익은 마땅히 지역 주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그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정책입니다.

지역 소멸을 막는 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을 덜어주는 데서 시작합니다. 가로수를 심어 ‘예쁜 하동’을 만든다고 사람이 유입되지 않습니다. 군민의 삶이 나아져야 사람이 모이고 지역이 살아납니다. ‘예쁜 하동’이 아니라 ‘먹고살 만한 하동’이 되어야 합니다.

하동의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할 시간정부는 올해도 시범 지역의 추가 선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기 위해 지자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돈이 없다”며 숟가락조차 올리지 않는 행정, 기회 앞에서조차 손을 놓는 행정은 결국 군민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가올 지방선거는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선거가 아닙니다. 하동의 예산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행정의 우선순위가 ‘군수의 치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군민의 삶’이어야 하는지—그 가치와 방향을 정하는 엄중한 시간입니다.

이제 하동은 군수의 눈높이가 아니라 군민의 ‘삶의 높이’에서 예산을 짜고 집행해야 합니다. 전시성 사업에 혈세를 낭비하지 않고, 군민의 주머니를 먼저 생각하는 행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동의 멈춰버린 시계를 다시 돌리는 길입니다.

남해의 웃음소리가 노량 바다를 넘어 하동의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이제는 행정의 우선순위를 ‘나무’가 아니라 ‘사람’으로 확실히 바로잡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