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너진 인구 4만의 자존심
김현수 전) 경상남도대외협력 특보
- 2026.01.27 제 40 호
본문
무너진 인구 4만의 자존심
전시행정의 허울을 벗고 실사구시(實事求是)로 하동의 내일을 열어야
어린 시절 횡천 냇가에서 뛰놀던 하동은 제게 언제 나 마르지 않을 샘물 같았 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마주 한 하동의 공기는 예전과 다릅니다. 장날의 북적임 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고, 동네 어귀의 빈집들은 저 녁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은 채 고요한 적막 속에 잠겨 있습니다.
통계청의 메마른 숫자보다 더 시리게 다가오는 것은, 그나마 우리 하동을 지 탱해 온 4만 명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 다는 사실과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군민들의 소리 없는 탄식이었습니다.
전시행정 탈피와 군민의 실익 우선 원칙
우리 하동의 인구가 결국 39,974명으로 내려앉았 습니다. 이웃 남해군(40,770명)에 사상 처음으로 인구 규모를 추월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의 역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래도 우리가 하동인데’라며 지켜온 군민 들의 마지막 자부심에 깊은 생채기가 났음을 의미 합니다. 이제 우리는 멈춰 서서 뼈아쁘게 물어야 합 니다.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우리 하동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행정의 본질은 군민의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는 불 안을 덜어내고, 내일에 대한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동의 행정은 과연 누 구의 만족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까?
이웃 남해군이 소리 없이 발로 뛰어 중앙정부를 설 득하고, 국비가 지원되는 ‘농어촌 기본소득’이라는 실질적인 미래 동력을 확보할 때 우리 하동은 무엇 을 했습니까? 정작 그 혜택이 절실했던 하동은 ‘예 쁜 하동’이라는 명목 아래 수백억 원의 아까운 예산 을 일회성 조경과 전시성 사업에 쏟아부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선거가 다가오자 우리 군민 을 위해 쓰여야 할 소중한 군비를 생색내기식 현금 살포와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으로 소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일시적인 마취제에 불 과합니다.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끌어올 행정력 은 보이지 않고, 그저 군 곳간만 비우는 행정은 결 코 하동의 내일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 ‘보여 주기’ 식 행정에서 벗어나, 군민의 자산 가치를 높 이고 소득의 근간을 다지는 ‘실익 행정’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합니다.
미래의 꿈을 품고 청년이 살아갈 수 있는 땅최근 군정은 마치 하동으로 청년들이 몰려오고 있 는 듯 홍보하고 있습니다. 청년층 유입이 대거 늘 었다는 일방적인 발표는 달콤해 보이지만, 그 이면 에 가려진 ‘순유출’의 진실은 참담합니다.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전형 적인 혹세무민이자 군민을 기만하는 선동입니다. 실제로 경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하동군의 젊은 층 유출 속도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20~24세 순이동률은 -16%로 전국 시·군·구 중 4번째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하동이 전국에 서도 손꼽히는 ‘청년 인구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 다는 이 지표는 하동의 미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화려한 홍보로 가려온 소멸 의 위기는 그 어떤 포장지로도 덮을 수 없는 하동 의 아픈 민낯입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단순히 청년 수십 명에게 청년 주택을 지어주거나 일회성 지원금을 나눠주는 식 의 처방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하동에서 미래를 꿈꾸며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 토양의 핵심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와 삶의 기본 권입니다. 갈사·대송산단을 활용한 전략적 기업 유 치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 향토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소득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이에 더해 내 자녀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과 같은 사회 인프라가 '패키지'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삶을 누리는 권리가 동시 에 충족될 때 비로소 청년들은 하동을 '살고 싶은 고향'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기반한 군민 중심 행정
제가 평생 언론인으로, 그리고 행정 전문가로 살며 가슴에 새긴 격언은 ‘실사구시’입니다. 사실에 입각 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태도입니다.
행정은 군민에게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군민의 발치에서 길을 닦는 서비스가 되어야 합니다. 문턱 을 낮추는 수준을 넘어, 행정이 먼저 군민의 아픔 을 찾아가고 해결하는 유기적인 조직으로 탈바꿈 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이 인사에 눈치 보지 않고 오직 군민을 위 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 비로소 하 동의 행정력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인구 4만 명의 벽이 무너진 지금은 하동의 가치를 다시 세울 마지막 기회입니 다. 뼈를 깎는 성찰과 실속 있는 변화만이 우리 하 동에 다시 활기찬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하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길을 겸 허히 함께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자부심을 되찾고, 오직 군민이 주인인 하 동의 미래를 위해 정교하게 준비하겠습니다. 하동 의 진정한 반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