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쁜 하동’이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심고 또 베는 가로수 군정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본문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예쁜 하동’이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심고 또 베는 가로수 군정


요즘 하동을 걷다 보면 하나의 공통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군민들의 표정은 밝지 만은 않다. 길 가장자리마다 새 화단이 만들어지고, 가로 수는 뽑혔다가 다시 심어진다.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또 다른 꽃이 심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수종으로 바 뀐다. 군정 홍보에는 언제나 ‘예쁜 하동’, ‘걷고 싶은 거리’, ‘매력 있는 가로수’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말들 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비슷한 질문이 남는다. 군민들은 의아해한다. 왜 이렇게까지 가로수와 조경수, 꽃밭을 끊 임없이 심어대는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정말 삶의 질 을 높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예쁜 하동의 상징이 된 가로수와 꽃밭


민선 8기 들어 하동군 행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 로수와 조경수, 그리고 꽃밭 조성 사업이 군정 전면에 등 장했다는 점이다. 면 소재지든, 읍 시가지든, 군청 주변 이든 예외가 없다. 기존에 나무가 있던 곳은 다시 손을 대고, 없던 곳에는 화단과 수목을 새로 조성한다. 하나 의 사업이 끝나면 또 다른 사업이 이어지고, 이름만 조 금씩 바뀔 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쁜 거리’, ‘명 품 가로수’, ‘보행친화’, ‘경관 개선’이라는 말들이 연속적 으로 붙는다.

문제는 이 사업들이 대부분 생활의 필요에서 출발했다 기보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초점이 맞 춰져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실제로 불편을 느끼는 주차 문제나 교통, 생활 인프라 개선보다 가로수와 꽃밭이 먼저 등장한다. 그래서 군민들 사이에서는 “왜 또 나무 를 심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또 어디를 파헤칠지 모 르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 던 가로수조차 ‘덜 예쁘다’는 이유로 제거 대상이 되고, 새 수종이 반복적으로 투입된다. 예쁜 하동이라는 구호 는 그렇게 가로수와 조경수, 꽃밭을 통해 가장 직관적으 로 드러난다.


옥종 대곡리, 심기 위해 베어낸 길


옥종면 대곡리 진주 방향 간선도로는 애초부터 군이 자 랑해도 될 만한 공간이었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 무들은 수령 30~40년에 이르는 아름드리 성목들이었고, 서로 가지를 맞대며 자연스러운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 었다. 봄이면 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그늘이 생겼다.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이미 지역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그 길을 ‘명품’이라는 말 없이도 명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길에 ‘명품 가로수 숲길 조성’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수십 년을 버텨 온 벚나무들은 한꺼번에 베어졌다. 병충해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고사목이나 안전 위험 수목이라는 설명도 없 었다. 실제 현장에는 속이 멀쩡한 굵은 그루터기와 잘려 나간 나무 토막들이 방치돼 있었다. 줄자를 대면 직경 40cm 안팎에 이르는 성목들이었다. 관리 차원의 정비라 고 보기 어려운, 사실상의 전면 제거였다.

더 큰 문제는 과정이다. 이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주민 설 명회가 충분히 있었는지, 기존 가로수를 보존하는 대안 이 검토됐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공사가 시작되 고 나서야 상황을 알게 된 주민들이 항의하자 일부 구간 은 중단됐지만, 이미 잘려 나간 나무는 되돌릴 수 없었다. 군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왜 베었는지, 왜 지금이었는지, 왜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 이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이미 형성돼 있던 벚꽃 경관을 허물어 놓고 새로 심겠다는 수종들이 과연 이 길의 시간과 기억 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수십 년을 자라 자연스 럽게 만들어진 그늘과 풍경은 단기간에 조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행정은 ‘심으면 된다’는 듯 기존 성목을 제거하 고 새로운 가로수와 조경수로 대체하려 했다. 심기 위해 베어낸 길, 이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옥종 대 곡리의 잘려 나간 그루터기들이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이 길을 바라보는 군민들의 분노는 단순히 나무 몇 그루 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완성돼 있던 것을 굳이 허물고, 그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행정의 태도 때문이다. 예쁜 하동이라는 구호 아래, 왜 가장 값비싼 자 산인 시간과 경관이 이렇게 가볍게 취급되는지, 군민들 은 묻고 또 묻고 있다.

끊임없는 식재, 반복되는 의아함과 불신

가로수와 조경수 사업이 문제 되는 이유는 특정 지역의 사례 때문이 아니다. 군민들이 의아함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 사업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하동 곳 곳에서 나무를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사하거나 기대 만큼 자라지 못하면 다시 뽑고, 또 다른 수종을 심는 장 면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예산은 투입되지만, 결과에 대 한 평가는 흐릿하다.

군민들이 특히 고개를 갸웃하는 대목은, 실패에 대한 성 찰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구간에서 어떤 수종이 잘 자라지 않았는지, 관리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 지, 토질과 환경이 맞았는지에 대한 분석이 공개된 적은 드물다. 대신 새로운 이름의 사업이 다시 시작되고, 또 다 른 가로수와 조경수가 등장한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다 보니 군민들 사이에서는 “이번에는 얼마나 갈까”, “내년 이면 또 바뀌지 않겠나”라는 냉소 섞인 말이 자연스럽 게 오간다.

수목과 조경 분야는 가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일반 군 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나무라도 규격과 수종에 따 라 비용 차이가 크고, 관급자재라는 이름으로 구조는 더 욱 복잡해진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좋지 않아도 책임 은 분산되고, 다음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군민 들 사이에서 ‘나무 심기는 돈 쓰기 좋은 사업’이라는 냉 소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명되지 않는 반복은 결국 의아함을 낳고, 그 의아함은 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 으로 번진다.


예쁨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과 공감이다


도시와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 자체를 문제 삼을 수 는 없다. 가로수와 조경수, 꽃밭은 분명 생활 환경의 질 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분명하다. 이미 자리 잡은 자연과 경관을 존중하고, 군민들이 왜 필요한지 공 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쁜 하동이라는 구호가 반복될수록, 그 예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그리고 그 비용과 관리 부담을 누가 떠안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커진다.

특히 가로수와 조경수는 한 번 심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 다. 지속적인 관리와 예산 투입이 뒤따르고, 시간이 지날 수록 손이 더 많이 간다. 처음 심을 때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몇 해가 지나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거나 흉 물스럽게 변하면 다시 손을 대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 되면, 처음의 ‘예쁨’은 사라지고 피로감만 남는다. 군민 들이 체감하는 것은 꽃의 색깔이 아니라, 행정의 방향성 과 일관성이다.

행정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군민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정책은, 아무리 많은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꿔도 설 득력을 얻기 어렵다. 오늘 심은 나무가 몇 해 뒤에도 살 아 있고, 군민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정책의 의미가 완성된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심고, 다시 베고, 또 다른 수종을 들여오는 방식이 계속된 다면 ‘예쁜 하동’은 구호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가로수 와 조경수, 꽃밭의 숫자가 아니라, 군민의 공감과 신뢰가 늘어나는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