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동의 유기동물, 복지의 이름 아래 죽어간다”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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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유기동물, 복지의 이름 아래 죽어간다”


하동군 유기동물, 수치가 말하는 잔혹한 현실


화려한 공약, 그러나 현실은 차갑다


하승철 군수는 취임 직후 “반려동물 등 동물보호·복지 확대 운영”을 내세우며 군민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약속 했다. 반려동물 등록 지원, 길고양이 중성화, 유기동물 진 료·입양 지원 등 보기엔 근사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 약의 문장은 반듯했지만, 그 속의 현실은 무너져 있었다. 복지(福祉)라는 단어는 따뜻하지만, 하동군 보호센터의 현장은 냉혹하다. 공약이 ‘확대’라면, 실제로 확대된 것은 죽음뿐이었다.

하동군은 군민들에게 ‘생명 존중’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보호소 안에서는 생명이 사라져갔다. 행정의 언어는 따 뜻했으나, 현장은 냉정했고, 복지의 약속은 허공에 흩어 졌다. 군수의 공약집이 아무리 화려해도, 사람들에게 버 림받고 신음하는 한 마리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 것은 거짓의 문장에 불과하다.


숫자가 드러낸 잔혹한 진실


하동군이 스스로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한 해 동안 유기동물 413마리 중 자연사 141마리, 안락사 189마리, 합계 330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사망률 79.9%라는 절망 적인 수치다. 2024년에도 353마리 중 266마리가 죽었고, 2025년 들어서도 절반 이상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전국 평균 사망률이 45% 수준, 경남 평균이 44.7%인 것에 비 해 하동군의 수치는 거의 두 배에 가깝다.

다음 해명은 지난 6월 하동군의회 행정사무감사 자리에 서 김민연 의원이 “유기동물 사망률이 왜 이렇게 높은 가”라고 질의했을 때 공무원들이 내놓은 답변에서 비롯 된 것이다. 

그들은 “병든 채 들어온 동물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도대체 왜 하동만 유독 병든 동물이 몰려온단 말 인가? 전국의 다른 보호소에는 건강한 개와 고양이만 들 어오고, 하동에만 병든 동물이 줄을 서서 입소한다는 말 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하동의 공기와 물이 병든 것인가, 아니면 행정의 무관심이 그들을 병들게 한 것인 가? 이런 억지 해명은 책임 회피의 전형이며, 사실을 흐 리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공직자의 답변이 이토록 비논 리적이라면, 그것은 무능의 고백일 뿐이다. 병든 생명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복지의 본질이다. 

그러나 하동군의 행정은 이 원칙을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병을 이유로 돌봄을 포기하고, 죽음을 행정적 처리 로 둔갑시킨다. ‘입소 후 자연사’라는 네 글자는 돌봄의 실패를 가려주는 면죄부처럼 쓰이고 있다. 질병이 이유 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치료하지 못한 책임까지 면책할 수는 없다. 복지 는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그 이름을 가질 수 있 다. 숫자로 포장된 보고서는 아무리 깔끔해도 생명의 울음을 지울 수 없다. 하동군의 동물복지는 지금 그 냉정 한 통계 속에서 생명보다 행정의 안위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수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는 점이다. 해마다 같은 비율로 반복되는 ‘죽음의 그래프’ 는 행정이 문제의 근본을 외면해왔음을 보여준다. 하동 군의 보호소는 이름만 보호소일 뿐, 사실상 ‘유기동물 처 리장’에 가까운 구조다.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이 입양률 을 높이기 위해 캠페인과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는 사이, 하동군은 여전히 통계표 속에서만 생명을 다루고 있다.


예산은 늘고, 생명은 줄었다


2024년 1억 4천7백만 원이던 보호센터 예산은 2025년 1 억 8천2백만 원으로 늘었다. 인력도 5명으로 늘렸지만, 사망률은 변하지 않았다. 돈은 더 썼는데 결과는 더 나빠 졌다. 도대체 예산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반려동물 등록 몇 마리’, ‘중성화 몇 건’ 같은 수치를 내세워 공약 이행률 을 포장하지만, 정작 보호소의 현실은 여전히 비극이다. 복지의 이름으로 행정이 행하는 것은 생명관리의 실패 요, 세금 낭비의 반복이다.

행정의 보고서에는 수치가 빼곡하지만, 그 어디에도 생 명의 온도는 없다. 예산은 해마다 늘었지만, 시스템은 제 자리걸음이다. 보호소의 구조는 여전히 낡았고, 질병 관 리 매뉴얼은 형식적이다. 

치료는 비효율적이고, 입양 홍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다. 그 사이 보호소의 케이지는 새로운 동물로 채워지고, 죽은 자리는 곧 다음 생명으로 메워진다. 행정의 무감각 이 반복을 만든다.

하동군이 진정 복지를 말하려면, 시스템부터 바로 세워 야 한다. 감염·질병 관리의 표준 절차를 세우고, 치료·입 양 연계를 구조화하며, 외부 평가를 정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데이터는 군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행정은 비밀이 아니라 신뢰 위에 서야 한다. 복지는 의례 가 아니라 구조이고, 그 구조는 투명한 통계와 살아 있는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죽음의 확대가 아니라 삶의 확대를


하동군의 ‘복지 확대’라는 말은 이제 풍자의 언어가 되었 다. 확대된 것은 보고서의 페이지 수와 변명의 레퍼토리 뿐이다. 보호소의 생명들은 여전히 좁은 철창 속에서 질 병과 외로움에 시달리다 스러진다. 이런 현실 앞에서 ‘복 지’란 말은 오히려 잔인하게 들린다.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침묵은 하동군 행정 의 민낯을 웅변한다. 한겨울의 찬 바람이 불어오는 밤, 보 호소 한켠의 철창 안에서 떨고 있는 한 마리의 개는 우 리에게 묻고 있다. “복지는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에 행정이 답하지 못한다면, 그 침묵은 군민의 분노로 돌아 올 것이다.

군민의 분노는 정당하다. 보호라는 이름의 방치, 복지라 는 이름의 죽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동물 애호가들 은 분노하고, 시민들은 묻는다. “우리는 어떤 행정을 위 해 세금을 내고 있는가.” 하승철 군수가 진정으로 책임 있는 행정을 원한다면, 공약집을 다시 읽을 게 아니라 사 망률을 절반으로 줄이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군민과 생명 앞에 최소한의 예의다.

이제 하동군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복지’라는 두 글 자를 지키고 싶다면, 종이 위의 공약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결과로 증명하라. 죽음의 확대가 아닌, 삶의 확대가 하동 군의 이름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하 동군의 ‘복지’는 부끄러운 단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