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동군의 예산 낭비 : 동학농민운동 기념이 아닌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기념해야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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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오늘날 종종 혁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근대 민권사상에 입각한 혁명과는 거리가 멀고, 실질적으로 전근대적 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이는 오늘날 국민주권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전혀 다른 궤를 달리하는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의 본질과 그 결과를 살펴보자.


매천 황현 선생의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기술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은 조선의 몰락과 국권 상실을 목도하면서 깊은 비애와 절망에 빠졌다. 

그는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의 주권이 박탈되자, 이 비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결을 결심했다. 

황현 선생은 전남 구례 자택에서 다량의 아편을 소주에 타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에는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 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결을 통해 조선 멸망에 대한 비장한 항거를 보여준 애국 열사였다.

황현 선생은 역사가로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운동이 근대적 의미의 혁명이 아니며, 오히려 당시 부패한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는 그의 유작인《매천야록》과 《오하기문》에서 잘 드러난다.

황현은 동학농민운동을 단순한 반란으로 간주하고, 동학군을 가리켜 시종일관 ‘적(敵)’ 또는 ‘비도 (匪徒)’라고 칭하였고, 동학 민란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의 기록은 당시 사회의 혼란과 동학농민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다.


동학농민운동의 배경과 목적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조선 말기의 사회적 혼란과 농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시기에 발생했다. 

농민들은 과도한 세금, 탐관오리의 부패, 지주들의 착취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학이라는 신흥 종교를 중심으로 농민들이 봉기했지만, 그들의 목적은 왕권을 무너뜨리거나 오늘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들은 부패한 관리들을 축출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고종과 민비의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태도 


아이러니하게도 동학농민군이 부패한 관리들을 축출하고 왕권 강화를 목표로 했음에도, 정작 고종은 동학농민군의 위협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청군이 출동하자 일본군 역시 조선에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종은 동학농민군을 단순히 반란군으로 간주하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이러한 고종의 동학 민란에 대한 대응은 외세의 개입을 불러와 결국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고종은 일본군의 철군을 반대하며 이들을 계속 조선에 주둔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의 힘을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민비 역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민비 역시 동학농민군을 반역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철저히 진압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녀는 외세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동학농민군을 제압하고 왕권을 지키고자 했다. 이러한 민비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조선의 정치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동학농민운동의 결과와 영향 


동학농민운동은 외세, 청국과 일본의 개입을 초래하여 결국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조선의 운명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시작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외세의 간섭을 불러일으키고 조선의 국권 상실을 가속화시켰다.

따라서, 동학농민운동을 혁명으로 찬양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이 운동은 근대 민권사상에 기반한 혁명과는 거리가 멀고, 전근대적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국민주권에 기반한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의 효율적 사용 촉구


하동군이 동학농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으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기념해야 할 것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대한민국의 역사이지, 조선의 역사가 아니다. 

하동군은 동학농민운동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찬란한 발전상을 기념하는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우리 후손들 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발전을 기념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