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화사별서가 요즘 수난이다 … 문화유산 관리가 이래서야?

花史別墅 문화유산은 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보존에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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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화사별서가 요즘 수난이다 … 문화유산 관리가 이래서야?


花史別墅 문화유산은 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보존에 나서야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할 구역 내 허가 난 시설물에 대한 경위를 철저하게 따져야 

문화유산 지정된 지 수년 흘렀지만 ‘형상변경 허용 기준’ 고시하지 않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가면 화사별서라는 경상남도 문화유산이 있다. 속칭 조씨고가로 불리며 소설 토지 최 참판댁에 모티브가 된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요즘 화사별서 가까운 거리에 농산물저온창고 가 건립되면서 문화유산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3월부터 4월 사이에 화사별서 인근 90여m 지점에 6~7평 규모의 농산물저온창고 건립 허가가 났다. 지금 은 기초공사를 거쳐 창고 본채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시 점이다. 

花史別墅는 경상남도 유형유산이다. 유형유산은 반경 300m 이내에서 형질을 변경하거나 건축물을 새로 지으 려면 철저한 영향성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마디로 사실상 토질을 깍거나 메우거나 나무를 심는 형질변경이 나 건축물을 새로 짓는 등의 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된다. 그런데 고작 10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인 데다, 화 사별서 본채에서 보면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지점에 저 온저장고 시설을 짓도록 허가를 했다. 이게 과연 문화유 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질과 부합하느냐를 두고 논란 이 일고 있다. 

문화유산 역내에 건축물 등을 짓거나 형질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영향성 검토 를 받아야 한다. 현장 확인은 물론 추후 그 그러한 구조 물이 들어섰을 경우 문화유산 보존에 어떤 영향을 가져 올 것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공익적 목적을 가진 시설물 이외에는 문화유산 보호 구역 내에서는 일절 금지하는 것이 원칙 이다. 만에 하나 구조물을 짓거나 형질변경을 한다고 할 지라도 문화유산에 위해가 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보완 하도록 해야 한다. 하동군은 사실 문화유산이 지정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형상변경 가능 기준’에 대한 고시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화사별서 인근에 올봄 허가가 난 저온창고는 농 산물 관련 시설이이서 반드시 문화유산 인근에 있어야 하는 시설물도 아닌 데다 문화유산 전망에서 눈에 들어 오는 직선거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구조물이다. 

이 경우 문화유산이 훼손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 이다. 그런데도 하동군은 얼마나 면밀한 점검이나 검토 를 거쳤는지는 몰라도 이 시설물의 허가를 내준 것이다.  본래 문화유산 인근에 시설물 설치 등 형상변경 허가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위원 3명 이상의 검토 의견이 첨부돼 야 한다. 이번 화사별서 사건에 있어서 이런 기초적인 절 차를 거쳤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화사별서 관리인은 “사설 문화재는 별도의 개 인 관리자가 있다 하더라도, 경상남도 문화유산인 만큼 하동군과 경상남도가 보존에 더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이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 는 문화유산 소유자가 더 걱정하는 형국이 되었으니, 주 객이 꺼꾸로 뒤집힌 게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또 관리인은 “검토 과정에 참가한 전문위원의 명단과 그 분들이 제시한 의견들을 공개할 것을 요청해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하동군이 이번 건에 검토위원으로 참가했 다는 교수에게 직접 질의를 해봐도 이렇다 할 근거나 대 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졸속으로 이번 시설 물 건축 허가가 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관리인은 따라서 이번 시설물 허가 과정을 철저히 조사 해서 관련 규정에 따른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감사 결과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하동군은 “약식영향 평가(진단) 등 관련 절차 를 충분히 거쳤으며, 허가와 관련한 각 부서의 검토 의견 을 받아서 최종 건축물 허가를 했다. 무엇보다 사유재산 권 침해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심했다”고 밝혔다. 

화사별서는 첫 건축 연대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19세기 중반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학난 때 일 부 건축물이 불탔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19세기 중기로 추정하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안채 등을 비롯한 건축물은 1918년과 그 이전인 1911년쯤에 보수 작업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최소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화사별서 등 유형 문화유산은 경남에 5곳이 있다. 그중에 서도 화사별서는 건축 당시 그 시대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본채는 한양에 있으며 별서 즉, 농막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왕실의 건축 양식을 본뜬 건축물이어서 보존 가치나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 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사별서는 6.25 한국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일부 파손돼 복구된 바 있지만 건축 양식과 건축 문화를 연구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경남에 지정된 문화재 자료 120여 개 가운데 가장 가치 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규모 면에서 도 문화유산이 자리잡고 있는 역내 면적이 경남 도내에 서 2번째로 크다. 

화사별서는 1,200여 평의 부지에 안채를 비롯해 현재 6 동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더 훼손되기 전에 국가 문화유산으로 격상시켜서 보존에 더 유의해야 한다 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개인 소유 문화재 또는 유산 일지라도 문화유산으로 지 정되면 공공의 유산이 된다. 보존과 관리도 공공의 노력 이 더해져야 한다. 화사별서의 경우 조씨 가문에서 관리 하고 있지만 이것이 소재한 하동군은 물론 경상남도가 더 적극적인 관리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번에 허가가 난 저온창고 문제를 두고 허가 경위를 철 저하게 파헤쳐 잘못됐거나 절차의 미숙이 드러나면 관련 공무원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철 저한 관리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문화재와 문화재의 경관은 한번 훼손되거나 망실되면 회 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후 복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역 사경관이 원형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보존과 현상 유지에 가장 방점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 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대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형상변경 가능 여부를 가려줄 기준( 형상변경허용기준)’에 대한 고시가 늦어진 이유도 밝혀 야 한다. 

한편 본지 기자가 저온창고 건립 현장을 찾아갔을 때, 창 고 부지 조성 과정에 재난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이 발견됐다. 사용 승인 이전에 이 부분의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전문가의 진단을 거쳐 대안이 마련돼야 하리라고 본다. 

/김회경 편집국장